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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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은 전라남도 구례군 오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사찰로, 원래 오산암으로 불리다가 용기, 원효, 도선, 진각 등 네 명의 고승을 기리기 위해 사성암으로 개칭되었다. 깎아지른 암벽에 지어진 사찰로, 대웅전, 지장전, 산신각, 도선굴 등의 전각과 마애여래입상 등을 갖추고 있으며, 섬진강, 구례읍, 지리산 연봉 등을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을 자랑한다. 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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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명칭 | |
한국어 명칭 | 사성암 |
한자 명칭 | 四聖庵 |
로마자 표기 | Saseongam |
일반 정보 | |
종교 | 불교 |
국가 | 대한민국 |
주소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월전리 189 등 |
상세 정보 | |
문화재 지정번호 | 명승 제111호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 |
지정일자 | 2014년 8월 28일 (명승) |
면적 | 71,129m² (명승)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 33 (사성암, 해제) |
문화재자료 지정일자 | 1984년 2월 29일 (사성암, 해제) |
창건 연도 | 544년 |
건축 | |
건축 양식 | 한국 건축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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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구례 오산은 경관이 뛰어나 1800년 구례향교에서 발간한 「봉성지」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 사성암은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오산암이라 불렀으나, 이후 의상, 원효대사, 도선, 진각국사가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5] 오산 사성암 일원은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등 7개 면,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우수한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의 사찰 건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5]
2. 1. 창건 설화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 원효대사, 도선, 진각국사가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5] 그러나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Yeongi Josa영어)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은 없다.[1] 연기조사는 인근의 화엄사와 영곡사를 창건한 인물이기도 하다.[1]2. 2. 사성암의 유래
사성암은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찰로서, 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처음에는 오산암이라 불렀다. 이후 이곳에서 의상, 원효, 도선,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5] 오산(Osan)의 해발 531m 정상 부근에 있어 오산암(Osanam)으로 불리다가, 이곳에서 수행한 용기 조사, 원효, 도선, 진각국사 네 명의 고승을 기리기 위해 "네 성인의 암자"라는 뜻의 사성암(Saseonga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기록에 따르면 원효와 도선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절벽에서 법을 수행했다. 암자 건물은 진각 선사(1178–1234)의 감독 아래 재건되었으며, 1980년대에 대웅전이 재건되었다.[1] 이곳에서 통일 신라 말기부터 고려 시대에 걸쳐 고승들이 고행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3]
2. 3. 고려 시대
사성암은 원래 오산(鰲山)의 해발 531m 정상 부근에 위치하여 오산암(鰲山庵)으로 불렸으나, 이곳에서 수행하고 연구했던 용기 조사, 원효 대사, 도선 국사, 진각 선사 등 네 명의 고승을 기리기 위해 "네 성인의 암자"라는 뜻의 사성암(四聖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2]기록에 따르면, 원효 대사와 도선 국사 모두 이 지역을 방문하여 이 절벽에서 법을 수행했다. 암자 건물은 진각 선사(1178–1234)의 감독 하에 재건되었으며, 1980년대에 대웅전이 재건되었다.[1]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말기부터 고려 시대에 걸쳐 고승들이 고행 (세속적인 쾌락을 포기함으로써 엄격한 자기 훈련과 적극적인 자기 절제를 통해 높은 정신적 또는 지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교리)을 수행한 곳으로 여겨진다.[3]
3. 구조 및 특징
오산 사성암에는 전각이 암자 앞쪽에 두 개, 본당 서쪽 능선 위에 두 개가 있다. 앞쪽의 두 전각은 커다란 채색 기둥으로 지탱하고 가파른 화강암 절벽에 기대어 있다. 오산 주변에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서 있는 부처 조각이 새겨져 있다.[3]
3. 1. 전각
오산 주변에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서 있는 부처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3] 암자 앞쪽에는 두 개의 전각이 있는데, 커다란 채색 기둥으로 지탱하고 가파른 화강암 절벽에 기대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두 개의 전각은 본당 서쪽의 능선 위에 자리 잡고 있다.대웅전은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이라고 불리는, 암벽에 새겨진 서 있는 부처님을 정면에 두고 세 개의 거대한 붉은 나무 기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암벽에 새겨진 부처님은 대웅전 뒷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다. 문화재 당국은 마애여래입상이 초기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가파른 돌계단이 다리로 이어져 대웅전으로 건너갈 수 있다.
지장전(殿)은 두 개의 석조 계단을 올라가면 본전 서쪽에 위치하며, 두 개의 큰 붉은 나무 기둥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전각 뒤에 있다. 지장전은 고통을 치유하는 지장 또는 지장보살에게 바쳐진 건물이다. 지장은 다양한 지옥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영혼에게 참회할 것을 간청한다.
산신각(山神閣)은 지장전 뒤편에 위치한 산신을 모시는 작은 전각이다. 산신은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함께 묘사되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역 산신이다.[3]
도선굴(굴)은 사실상 삼성각 옆 거대한 절벽 바위 사이의 통로에 불과하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전해지며, 200년 후에는 국사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의 한국 적용 이론을 연구하면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3][4]
3. 2. 대웅전
대웅전은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이라고 불리는, 암벽에 새겨진 서 있는 부처를 정면에 두고 세 개의 거대한 붉은 나무 기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암벽에 새겨진 부처는 대웅전 뒷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다.[3]문화재 당국은 마애여래입상이 초기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가파른 돌계단이 다리로 이어져 대웅전으로 건너갈 수 있다.[3]
3. 3. 지장전
지장전은 두 개의 석조 계단을 올라가면 본전 서쪽에 위치하며, 두 개의 큰 붉은 나무 기둥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전각 뒤에 있다. 지장전은 고통을 치유하는 지장에게 바쳐진 건물이다. 지장은 다양한 지옥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영혼에게 참회할 것을 간청한다.[3]3. 4. 산신각
산신각은 지장전 뒤편에 있는, 산신을 모시는 작은 전각이다. 산신은 일반적으로 호랑이와 함께 묘사되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역 산신이다.[3]3. 5. 도선굴
도선굴은 삼성각 옆 거대한 절벽 바위 사이의 통로이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전해지며, 200년 후에는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의 한국 적용 이론을 연구하면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3][4]4. 경관
오산은 경관이 뛰어나 1800년 구례향교에서 발간한 「봉성지」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
사성암은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찰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의상, 원효, 도선, 진각국사가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5]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은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등 7개 면,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우수한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의 사찰 건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5]
5. 지정 가치
구례 오산은 경관이 뛰어나 1800년 구례향교에서 발간한 「봉성지」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
사성암은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찰로서,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의상, 원효, 도선,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5]
구례 오산 사성암 일원은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등 7개 면,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우수한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의 사찰 건물과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5] 사성암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이다.[3]
참조
[1]
웹사이트
san-shin.net 1
http://san-shin.net/[...]
2012-06-20
[2]
웹사이트
/sacredsites.com
http://sacredsites.c[...]
2012-06-20
[3]
웹사이트
discoveringkorea.com
http://discoveringko[...]
2012-06-20
[4]
웹사이트
san-shin.net 2
http://san-shin.net/[...]
2012-06-20
[5]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
http://gwanbo.mois.g[...]
문화재청장
201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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